홀로코스트와 욤 하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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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코스트와 욤 하쇼아
최광희 목사
홀로코스트는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명칭이다. 모름지기 식자(識者)라면 이 정도는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홀로코스트’라는 용어의 뜻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추모일이 언제인지는 따로 연구하지 않으면 알기 어려운 부분이다.
홀로코스트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 그러니까 헬라어로 “완전히 불태워진”을 뜻하는 홀로카우스토스(ὁλόκαυστος)에서 나온 말이다. 그렇다면 이 말은 성경에 나오는 번제(燔祭)와 같은 뜻인데 번제는 히브리어로 올라(עֹלָה)라고 한다. 이 올라(עֹלָה)가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옮긴 칠십인역 성경에서는 홀로카우스토스(ὁλόκαυστος)로 번역되었다.
성경에서 번제는 매우 거룩한 제사인데 유대인 학살을 왜 번제를 뜻하는 헬라어 홀로카우스토스(ὁλόκαυστος)라고 했을까? 그리고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을 왜 독일어나 히브리어가 아닌 헬라어에서 유래한 말로 표현하게 되었을까?
헬라어 홀로카우스토스(ὁλόκαυστος)는 라틴어와 영어로 넘어오면서 19세기에는 대화재나 대규모 참사를 뜻하는 말로 쓰이다가 20세기에는 대량 학살이나 파괴를 뜻하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처럼 서구권에서 대참사, 대량 파괴를 뜻하는 말로 쓰이던 ‘홀로코스트’는 특히 미국에서 방영된 TV 시리즈 ‘Holocaust’의 영향으로 유대인 학살을 뜻하는 말로 완전히 굳어지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유대인들은 유대인 학살을 ‘번제’를 뜻하는 ‘홀로코스트’로 표현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동족이 600만 명이나 학살된 사건이 하나님께 드려진 거룩한 제사처럼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사건을 ‘재앙’ 혹은 ‘파괴’를 뜻하는 단어 ‘쇼아’(שואה)라고 부르기를 더 좋아한다. 쇼아(שואה)에 정관사를 붙이면 하쇼아(השואה)가 되고 그 사건을 추모하는 날은 “욤 하쇼아”(יוֹם הַשּׁוֹאָה)가 된다.
그러면 욤 하쇼아는 언제인가? 국제적으로 홀로코스트 추모일은 1월 27일이다. 이날은 소련군에 의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해방된 1945년 1월 27일을 기념한 날인데 2005년에 유엔이 공식적으로 결정했다.
한편, 양력 1월 27일에 국제사회가 홀로코스트를 추모하며 인류가 저지른 죄악을 돌아보는 것과는 별개로 유대인들은 다른 날을 홀로코스트 추모일, 즉 “욤 하쇼아”(יוֹם הַשּׁוֹאָה)로 지키고 있는데 그날은 니산월 27일이다. 니산월은 유대력으로 첫째 달이기에 똑같은 1월 27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날짜도 다르고 그날을 정한 이유도 다르다.
1943년 4월 19일부터 5월 19일 사이에 나치 점령지 폴란드의 바르사바 게토에서 유대인에 의한 무장봉기가 있었다. 처음에는 유대인 무장 세력이 잘 싸웠으나 결과적으로는 나치에 의해 게토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기억 속에서 그 사건은 홀로코스트에 맞선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유월절 기간을 피해 4월 19일과 5월 19일 사이의 한 날을 욤 하쇼아로 정했는데 그것이 바로 “니산월 27일”이다. 그렇다면 니산월 27일은 언제인가? 니산월 14일 저녁에 유월절이 시작되므로 욤 하쇼아는 그로부터 13일 후이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2026년의 경우 4월 15일 저녁이 바로 그날이다.
지금은 유대인들의 욤 하쇼아가 임박한 날인데 최근에 유대인들이 민감하게 여길 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한 영상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와 함께 홀로코스트를 언급한 것이다. 문제는 해당 영상이 사실관계가 맞지 않는, 요즘 말로 ‘가짜뉴스’라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영상 속 사건은 2년 전 사건으로 이스라엘 군인들이 테러범의 시신을 처리한 모습이었다. 그 일로 해당 병사들이 처벌까지 받았던 일인데 마치 현재 벌어지는 일처럼 영상을 공유한 것은 너무나 부주의한 일이었다.
쇼아(שואה), 즉 홀로코스트는 무고한 600만 명의 생명이 희생된 인류 최악의 비극 가운데 하나이다. 그렇기에 이 사건은 정치적 수사로 가볍게 언급할 성격의 사건이 아니다. 특히 유대인들에게 있어 이 사건은 ‘쇼아’가 의미하듯이 재앙이며, 그들에게는 이것이 현재진행형의 아픈 기억이다. 이런 점에서 사실 관계도 맞지 않는 영상 자료를 공유하며 홀로코스트를 언급한 것은 역린(逆鱗)을 건드린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교롭게도 그 시점이 욤 하쇼아를 앞둔 민감한 시기라는 점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길 수 없는 책임의 문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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